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미군 (문단 편집) == 미국 내 여론 == [[베트남 전쟁]]하면 [[히피]]들과 [[진보주의|진보]] 단체들의 시위 행렬을 떠올리기 쉽고 실제로 당시에는 인종차별과 계층갈등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기때문에 어수선했던것도 사실이었지만, 베트남 전쟁 초기의 미국 여론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당시에는 1964년 [[통킹만 사건]]이 조작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인 데다가 일반 국민들도 [[레드 컴플렉스|공산주의에 대한 병적 공포]]에 판단력을 상실하고 [[도미노 이론]]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 이후 '정의로운 세계의 경찰 미국'을 진지하게 믿었던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베트남 공화국|베트남]]도 [[베트남 민주 공화국|빨갱이]]들로부터 구하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응오딘지엠]]의 만행이 좀 알려지긴 했지만 어쨌든 대통령을 [[응우옌반티에우]]로 갈아치운 직후에 전쟁이 터졌기 때문에 남베트남 정권에 대한 여론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물론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선이 지지부진해진데다가, 그간의 인종문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쟁점이 되었던지라 196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서 존슨 대통령의 인기가 크게 나빠졌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1967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좋은 편이었고 당연히 미국이 이기고 있다고 믿었으며 [[네이팜탄]]을 맞고 불바다가 되는 북베트남 마을이 나오는 뉴스를 보고 환호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1968년 [[구정 공세]]의 실상이 낱낱히 드러나고 미국 대사관이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에게 공격받는 모습이 여과 없이 방영되면서 급격하게 기울어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내 반전 시위의 모습은 대부분 구정 공세 이후의 모습이다. 또한 1970년 미군의 캄보디아 폭격[*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베트남-캄보디아 국경에 베트콩 비밀 기지가 있다는 구실로 무차별 폭격을 가해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환경 파괴를 저질렀다. 이에 대한 친미 군사독재 [[론 놀]] 정권의 묵인과 방조는 [[크메르 루주]] 정권 수립과 [[킬링필드]]라는 최악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폭로[* 폭로가 이루어진 직후인 1970년 5월 4일 [[오하이오 켄트 주립대학교 발포 사건|켄트 주립대학교에서 주방위군이 비무장 시위대에 집단 발포해 4명이 죽고 9명이 부상당하는 사건]]도 터졌다.]와 1971년 [[펜타곤 페이퍼]] 등 미국 언론에서도 미군에 불리한 이슈가 지속적으로 터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